전량 매도: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미국의 4대 대형 항공사(유나이티드, 아메리칸, 사우스웨스트, 델타 항공)의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고 밝혔습니다. (매각 전 이들 지분의 가치는 40억 달러 이상이었습니다.)
투자 실패 인정: 버핏은 항공주 투자에 대해 “내가 틀렸었다(I made a mistake)”고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당초 약 70억~80억 달러를 투자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큰 손실을 보고 전량 처분하게 되었습니다.
2. 매각 결정을 내린 이유
항공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 코로나19로 인한 강제 셧다운(운항 중단)으로 인해 “항공업계의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진단했습니다.
경영진의 잘못이 아님: 이번 실패는 4개 항공사 CEO들의 잘못이 아니며,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전염병 사태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불투명한 미래 수요: 버핏은 “앞으로 3~4년 뒤에도 사람들이 작년(팬데믹 이전)만큼 비행기를 많이 탈지 알 수 없다”며, 수요 대비 비행기가 너무 많아지는 구조적 공급 과잉 문제를 경고했습니다.
3. 정부 지원금과 부채 부담
팬데믹으로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면서 미국 항공사들은 정부로부터 25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과 대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버핏은 항공사들이 앞으로 정부 대출을 갚아야 하고, 정부가 향후 주식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워런트(주식인수권)도 발행해 주어야 하므로, 향후 주가와 기업 가치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한 줄 요약 워런 버핏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항공 산업의 미래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판단하고, 거액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미국의 4대 항공사 주식을 전량 매각하며 자신의 판단 착오를 인정했습니다.
워런 버핏과 항공사의 관계는 투자 역사에서 매우 유명하며, “애증의 관계”라고 부를 만큼 긴 스토리가 있습니다. 2020년 팬데믹 당시의 매도 외에도, 버핏이 항공사 투자에 대해 남긴 추가적인 설명과 역사적 맥락을 몇 가지 핵심 포인트로 정리해 드립니다.
1. 과거의 혹평: “투자자들의 죽음의 덫(Death Trap)”
사실 워런 버핏은 2016년 항공주를 대량 매수하기 전까지, 수십 년간 항공업계를 가장 혐오하는 투자처로 꼽았습니다.
1989년의 첫 실패: 버핏은 1989년 ‘US에어(USAir)’의 우선주에 3억 5,800만 달러를 투자했다가 큰 고생을 했습니다. 항공사의 높은 고정비(인건비, 연료비)와 노조와의 갈등으로 회사가 파산 위기까지 몰렸기 때문입니다. 운 좋게 1998년 주가 상승기에 이익을 보고 빠져나왔지만, 버핏은 이를 “원하지 않았던 unforced error(자책골)”라고 부르며 반성했습니다.
독설: 이후 주주총회와 서한을 통해 항공업에 대해 유명한 독설들을 남겼습니다.”라이트 형제가 처음 비행기를 띄웠던 키티호크에 선견지명이 있는 자본가가 있었다면, 후대의 투자자들을 위해 오빌 라이트(동생)를 격추해 버렸어야 했다.””항공업은 성장은 아주 빠른데 돈은 전혀 벌지 못하고, 성장을 위해 엄청난 자본만 계속 빨아먹는 ‘가장 최악의 비즈니스’다.”
2. 2016년, 왜 생각을 바꾸고 다시 샀는가?
그랬던 버핏이 2016년 말, 미국 4대 항공사 지분을 무려 80억 달러 가까이 사들이며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생각을 바꿨던 이유는 항공업계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과점 체제로의 재편: 과거 수많은 소형 항공사들이 난립해 출혈 가격 경쟁을 벌이던 시대가 지나고, 합병을 통해 4대 대형 항공사 중심의 안정적인 ‘과점 체제’가 완성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높은 탑승률과 자사주 매입: 항공사들이 좌석 효율을 극대화해 높은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번 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주주 가치를 높이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통제 가능한 비즈니스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3. 2020년 전량 매도의 본질: “자본을 갉아먹는 기업엔 투자 안 한다”
코로나19가 터지자 버핏은 미련 없이 전량 매도를 감행했는데, 이때 그의 투자 철학이 담긴 추가 설명이 있었습니다.
미래 이익의 불확실성과 주주 가치 희석: 버핏은 단순히 주가가 떨어져서 판 것이 아닙니다. 정부 지원금을 받게 된 항공사들이 향후 이 대출을 갚아야 하고, 정부에 신주인수권을 발행해 주어야 하므로 미래의 주주 지분이 크게 희석(가치 감소)될 것이라 보았습니다. 또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도 수년간 금지될 것이 확실했습니다.
“돈을 삼키는 블랙홀”: 버핏은 “앞으로 미래에 계속해서 돈을 갉아먹을(chew up money)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에는 단 1달러도 남겨두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싸졌더라도 구조적으로 적자가 지속될 사업이라면 손절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었습니다.
4. 손절 이후의 평가
버핏이 매도한 직후, 백신 개발 기대감 등으로 항공주가 일시적으로 급등하자 시장에서는 “오마하의 현인도 이번엔 저점에서 성급하게 팔았다”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버핏은 이후에도 “항공주 투자는 내 투자 건강에 해롭다(hazardous to your investment health)”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이후 항공사들은 누적된 부채와 비즈니스 출장 수요의 영구적인 감소(화상회의 대체 등)로 오랜 기간 실적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장기 가치를 중시하는 버핏의 ‘과감한 손절’이 결과적으로 옳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드라마 <참교육>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동명의 웹툰 <참교육>(글: 채용택 / 그림: 한가람)을 원작으로 합니다.
📌 원작 웹툰과 드라마 정보
원작 웹툰: 와이랩(YLAB)의 ‘블루스트링’ 세계관에 포함된 작품으로, 네이버 웹툰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김무열(나화진 역), 진기주(임한림 역), 표지훈(봉근대 역), 이성민(최강석 역) 등이 주연을 맡아 제작되었으며, 10부작 분량으로 공개되었습니다.
💡 주요 내용 무너진 교권을 바로잡기 위해 신설된 가상의 정부 기관인 ‘교권보호국’ 소속 감독관들이 학교 현장에 투입되어, 선을 넘는 문제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액션·사회고발 드라마입니다.
원작 웹툰이 연재 당시 과격한 표현이나 특정 에피소드로 인해 논란과 우려가 있었던 만큼, 드라마판에서는 이러한 민감한 요소를 다듬고 피해자 보호와 권선징악의 서사에 더 집중하여 대본을 각색한 것이 특징입니다.
와이랩(YLAB)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웹툰 전문 기획·제작사(웹툰 스튜디오)입니다. 만화 <신암행어사>, <아일랜드> 등으로 유명한 스타 만화가 윤인완 작가가 2010년에 설립했습니다.
단순히 작가의 개인 마감이나 연재를 관리하는 에이전시를 넘어, 회사 주도로 기획, 스토리 개발, 작화, 글로벌 유통(로컬라이징), 2차 영상화 사업까지 직접 총괄하는 ‘종합 콘텐츠 스튜디오’ 시스템을 한국 웹툰 업계에 정착시킨 선구자적인 기업입니다.
와이랩을 이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들을 정리해 드릴게요.
🦸♂️ 와이랩의 정체성: ‘웹툰 유니버스(세계관)’의 최강자
마블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있다면, 한국 웹툰에는 ‘와이랩 유니버스’가 있습니다. 와이랩은 각각의 독립된 웹툰 속 주인공들이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며 만나는 ‘크로스오버’ 형태의 프로젝트를 국내 최초로 정착시켰습니다.
타깃 독자층과 장르에 따라 크게 세 가지 핵심 ‘스트링(String)’ 세계관으로 나뉩니다.
세계관 이름
주요 장르 및 특징
대표 작품
슈퍼스트링 (Super String)
판타지, 이능력, 아포칼립스, 히어로물 (와이랩 최초이자 가장 거대한 세계관)
<테러맨>, <부활남>, <신석기녀>, <아일랜드>
블루스트링 (Blue String)
10대 청춘, 현실 기반 액션, 학원물 (드라마 원작인 <참교육>이 속한 곳)
<참교육>, <스터디그룹>, <한림체육관>, <죽지 않으려면>
레드스트링 (Red String)
로맨스, 인연, 여성향 로맨스 유니버스
<성경의 역사>, <헤어지면 죽음>, <전생연분>
🛠 와이랩만의 독보적인 사업 인프라
체계적인 프로듀싱 시스템: 기획 단계부터 베테랑 프로듀서들과 아트팀이 협업하여 시나리오와 콘티, 드로잉, 채색 등을 분업화하여 퀄리티 높은 작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합니다.
YLAB PLEX (영상화 사업): 자사가 보유한 웹툰 IP(지식재산권)를 바탕으로 직접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사내 독립 기업(CIC)을 운영 중입니다. (드라마 <참교육> 제작 역시 이러한 인프라의 결과물입니다.)
YLAB ACADEMY (웹툰 학원): 국내 최초의 웹툰 전문 교육 기관을 직접 설립하여 운영하며, 지속해서 실력 있는 신인 웹툰 작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진출 (YLAB STUDIOS / EARTH): 일본 도쿄에 자회사를 두고 일본 현지 작가들과 만화를 제작하거나, 자체 번역·로컬라이징 시스템을 통해 네이버웹툰 등을 타고 전 세계 시장에 K-웹툰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 한 줄 요약
와이랩은 개별 웹툰 제작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와 세계관을 자산화’**하여 이를 게임, 드라마, 영화로 무한 확장하는 한국형 OSMU(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인 기업입니다.
매출액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된 와이랩의 최근 실적에 따르면, 와이랩의 2025년 연간 매출액은 약 370억 원입니다.
자체 보유한 웹툰 IP를 활용한 드라마 제작 등 영상 사업 부문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매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습니다.
최근 2년간의 연결 기준 주요 재무 실적을 비교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와이랩 연간 실적 요약 (연결 기준)
구분
2024년 연간 실적
2025년 연간 실적
전년 대비 증감률
매출액 (수익)
약 249억 6,642만 원
약 370억 6,923만 원
+48.4% 상승
영업이익
약 -100억 3,879만 원
약 -85억 8,872만 원
적자 폭 감소
당기순이익
약 -95억 1,595만 원
약 -85억 105만 원
적자 폭 감소
💡 실적 트렌드 분석
영상 사업의 견인: 2025년 실적에서는 드라마 관련 매출을 담당하는 영상 사업 부문 매출이 251억 원을 기록(전년 131억 원 대비 91.5% 급증)하며 전체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네이버 웹툰 원작이자 직접 제작에 참여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참교육> 등의 제작 계약 성과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수익성 개선 과제: 매출은 크게 뛰고 영업손실 규모도 줄어들며 다소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으나, 콘텐츠 제작 비용 및 투자 확대로 인해 여전히 적자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팬덤 비즈니스 기업을 인수하는 등 완결된 IP의 굿즈·팬덤 마케팅을 통한 다각도 수익화 체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명나라의 건문제(建文帝, 재위 1398~1402)는 조부인 홍무제 사후 즉위했지만, 정치적으로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결국 숙부인 영락제에게 왕위를 빼앗기게 됩니다. 이를 흔히 정난의 변(靖難之變)이라고 합니다. 정난의 변
건문제 정치의 주요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번왕 축소 정책(삭번)의 과격한 추진
홍무제는 아들들을 각 지방의 번왕(왕)으로 보내 강력한 군사력을 갖게 했습니다.
건문제는 황권 강화를 위해 숙부들의 권한을 줄이는 삭번(削藩)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문제는:
여러 번왕을 너무 짧은 기간에 연속적으로 제거함
반발 가능성을 과소평가함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연왕(燕王, 후일 영락제)을 먼저 제압하지 못함
결국 영락제에게 “다음 차례는 나”라는 위기의식을 심어 주었습니다.
2. 이상주의적 개혁
건문제는 유학자 관료들의 조언을 받아 중앙집권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군사력 계산이 부족
지방 세력의 저항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함
제도 개혁 속도가 너무 빠름
당시 명나라는 건국 직후여서 군사적 안정이 매우 중요했는데, 정치적 명분을 우선시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3. 군사적 경험 부족
건문제는 어려서 즉위했고 군사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반면 영락제는:
북방에서 몽골과 수십 년간 전투
정예 북방군 보유
장수들의 신망 확보
건문제는 군사 지휘관 인사와 전략 수립에서 잦은 실수를 했습니다.
4. 인재 등용의 한계
건문제는 유학자 출신 측근들을 중용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태
황자징
방효유
이들은 학문적 능력은 뛰어났지만 군사·정치 실무 경험은 부족했습니다.
반면 영락제 진영에는 경험 많은 장군들이 많았습니다.
5. 영락제에 대한 초기 대응 실패
영락제가 병을 핑계로 조정의 소환을 거부할 때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연왕의 군사력을 과소평가
북방군 통제 실패
반란 초기 진압 기회 상실
이 때문에 작은 반란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태가 전국적 내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결과
정난의 변에서 건문제는 패배했고, 1402년 난징이 함락되었습니다.
이후 건문제의 행방은 불명확하며:
궁궐 화재로 사망했다는 설
승려로 변장해 탈출했다는 설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건문제를 “개혁 의지는 있었지만 정치력과 군사력이 부족했던 이상주의적 군주”로 평가합니다. 반면 영락제는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뛰어난 행정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명나라의 전성기를 열었다고 평가됩니다.
영락제(永樂帝, 재위 1402~1424)는 명나라를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뛰어난 군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상당한 정치적 문제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정통성 부족
영락제의 가장 큰 약점은 즉위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조카인 건문제를 몰아내고 정난의 변을 통해 황제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황위를 강제로 찬탈
건문제의 생사 불명
많은 신하들이 즉위를 인정하지 않음
이 때문에 영락제는 재위 내내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2. 대규모 숙청과 공포정치
영락제는 반대파를 매우 강하게 탄압했습니다.
대표 사례가 학자 방효유 사건입니다.
방효유가 즉위 교서를 작성하는 것을 거부하자:
본인 처형
친족과 제자까지 연좌
전해지는 기록에는 “십족(十族)을 멸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건문제 지지 세력 대규모 처형
관료 사회에 공포 조성
정치적 자유 위축
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3. 환관 권력 확대
영락제는 문관들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환관을 적극 활용
정보 수집 업무 부여
황제 직속 조직 강화
대표적으로:
동창 설치
동창은:
관리 감시
정치 사찰
비밀 보고
를 수행했습니다.
이는 후대 명나라에서 환관 정치가 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과도한 토목사업
영락제는 국가적 대사업을 많이 추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금성 건설
베이징 천도
대운하 정비
북방 방어시설 확충
이 사업들은 국가 발전에 기여했지만,
막대한 세금
대규모 노동력 동원
백성 부담 증가
라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자금성
8
5. 잦은 대외 원정
영락제는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펼쳤습니다.
대표 사례:
몽골 원정 5회
베트남 점령 전쟁
북방 군사작전 지속
특히 베트남(당시 대월) 점령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베트남 지역에서:
지속적인 저항
막대한 군비 지출
병력 손실
이 발생했습니다.
6. 언론·학문 자유 제한
영락제는 문화사업도 추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락대전 편찬
하지만 정치 비판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황제 비판 금지
반대 의견 탄압
사상 통제 강화
등으로 인해 지식인 사회의 자율성은 크게 제한되었습니다.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국가 통합
황위 찬탈
군사력 강화
대규모 숙청
베이징 천도
환관 세력 확대
자금성 건설
백성 부담 증가
영락대전 편찬
공포 정치
해상 진출 확대
전쟁 비용 증가
종합 평가
영락제는 명나라를 전성기로 이끈 유능한 군주였지만, 그 성공의 상당 부분은 강력한 권력 집중과 정치적 탄압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역사학자들은 그를 “능력은 뛰어났으나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한 군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나라 건문제 시기 조선 상황
명나라 건문제의 재위 기간(1398~1402년)은 조선 초기와 겹칩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태조가 퇴위하고, 정종과 태종이 차례로 집권하던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연표로 보면
연도
명나라
조선
1398
건문제 즉위
제1차 왕자의 난
1398~1400
건문제
정종 재위
1400
건문제
제2차 왕자의 난, 태종 즉위
1402
영락제 즉위
태종 재위
흥미롭게도 명나라와 조선 모두 비슷한 시기에 왕위 계승 분쟁을 겪었습니다.
조선의 제1차 왕자의 난 (1398)
제1차 왕자의 난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다섯째 아들인 태종(당시 이방원)이 정도전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결과:
정도전 피살
세자 이방석 제거
태조 충격으로 퇴위
정종 즉위
이 사건은 건문제가 즉위한 바로 그 해에 발생했습니다.
정종 시대 (1398~1400)
정종은 형식상 왕이었지만 실권은 대부분 이방원이 장악했습니다.
주요 특징:
수도를 개경으로 일시 이전
왕자 세력 간 갈등 지속
이방원의 권력 확대
제2차 왕자의 난 (1400)
제2차 왕자의 난
이방원과 형 이방간이 충돌했습니다.
결과:
이방원 승리
이방간 유배
정종 양위
태종 즉위
건문제가 번왕들을 제거하려던 시기와 거의 같은 시점입니다.
명나라의 정난의 변과 조선
1402년에는 명나라에서
정난의 변
이 일어나 영락제가 즉위했습니다.
조선 태종은 매우 신중하게 대응했습니다.
처음에는 관망
조선 조정은
건문제 편도 들지 않고
영락제 편도 들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쪽이 최종 승자가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락제 즉위 후
영락제가 황제가 되자 조선은 빠르게 새 황제를 승인했습니다.
태종은
조공 관계 유지
외교 안정 확보
명과의 충돌 회피
를 우선시했습니다.
덕분에 조선은 영락제와 비교적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건문제 시기 조선의 가장 큰 특징
왕자의 난으로 내부 권력투쟁 진행
정종에서 태종으로 왕권 교체
명나라 역시 건문제와 영락제의 내전 진행
태종이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 시작
명·조선 모두 중앙집권 체제가 강화되는 과정
즉, 건문제 시대의 조선은 “왕자의 난을 거쳐 태종이 집권하며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변모하던 시기”였고, 명나라 역시 건문제와 영락제의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398~1402년은 명나라와 조선 모두에서 왕권 재편과 권력 집중이 동시에 진행된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이방간 은 누가인가 ?
이방간(李芳幹, 1364~1421)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이며, 태종 이방원의 형입니다.
조선 초기에 왕위 계승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결국 동생 이방원에게 패배하여 정치 무대에서 물러났습니다.
가계
아버지: 태조
형: 진안대군
형: 정종
본인: 이방간
동생: 태종
즉, 태종의 친형입니다.
왕자의 난의 주역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정도전 세력 제거
세자 이방석 제거
정종 즉위
가 이루어졌지만, 왕자들 사이의 권력 경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인물은 이방원이었지만, 이방간 역시 상당한 군사력과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2차 왕자의 난 (1400)
제2차 왕자의 난의 직접적인 당사자입니다.
배경
일부 측근들이 이방간에게
“이방원이 권력을 독점하려 하니 먼저 제거해야 한다”
고 부추겼습니다.
특히
박포
가 적극적으로 이방간을 설득했습니다.
결과
개경에서 양측 군대가 충돌했습니다.
결과는:
이방원 승리
이방간 패배
박포 처형
이방간은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습니다.
왜 죽지 않았나?
태종은 형제를 대거 죽인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친형인 이방간은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로는:
친형이라는 점
반란 규모가 제한적이었던 점
왕실의 체면
등이 거론됩니다.
대신
작위 박탈
재산 몰수
지방 유배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말년
이방간은 유배지에서 비교적 조용히 살다가 1421년에 사망했습니다.
태종은 훗날 형에게 어느 정도 예우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역사적 평가
이방간은 조선 건국 과정에 참여한 공신이었지만,
정치적 결단력
세력 조직 능력
인재 장악력
에서 동생 이방원보다 크게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만약 제2차 왕자의 난에서 승리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겠지만, 실제로는 태종이 승리하면서 조선의 강력한 왕권 체제가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